『태종실록』 · 이순신 장계 · 이분 「행록」 · 『이충무공전서』 기록 비교
거북선을 떠올리면 쇠로 덮인 등과 용머리가 먼저 생각나요. 그런데 익숙한 모형의 모습과 임진왜란 당시 기록이 말하는 모습은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저도 어릴 때는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지금은 멋진 수식어보다 어느 시대의 기록이 무엇을 설명하는지 먼저 살피는 편이 낫다고 봐요.
용머리에서 포를 쐈다는 설명은 기록에 있지만, 층수는 같은 방식으로 확인되지 않아요. 배의 형태에 관한 기록을 따라가며 확인되는 부분과 남아 있는 질문을 나눠볼게요.
거북선 기원
거북선의 이름은 이순신의 활동보다 앞선 기록에도 등장해요.
1413년 『태종실록』에는 태종이 임진강 나루에서 귀선과 왜선 모형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봤다는 기사가 있어요. 귀선은 거북선을 뜻하는 이름이에요.
1415년에는 관리 탁신의 상소에 귀선이 다시 나와요. 많은 적과 부딪쳐도 해를 입지 않는 좋은 계책이라며, 더 견고하고 정교하게 만들 것을 건의한 내용이에요.
다만 이 두 기록만으로 용머리나 지붕, 내부 구조까지 그릴 수는 없어요.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조선 초기의 귀선과 이순신의 거북선을 같은 형태로 보는 것은 조심해야 해요. 이순신의 역할도 최초 발명이라는 한마디보다, 앞서 존재한 배의 개념을 실전에 맞게 발전시킨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해 보여요.

거북선 용머리와 덮개
용머리는 그저 위용을 드러내는 장식이었을까요? 1592년 이순신의 장계에는 그 입으로 포를 쐈다는 설명이 있어요.
1592년 장계의 설명
당포 해전 승리를 보고한 장계는 앞에 용머리를 붙이고 그 입으로 대포를 쏘며, 등에 쇠못을 꽂았다고 설명해요.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엿볼 수 없게 했다는 내용도 있어요. 적선 사이로 들어가 포를 쏘는 배라는 설명과 함께 읽으면, 덮개가 배 안의 사람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어요.
쇠못은 적이 배 위로 올라오는 것을 막는 장치였어요. 적선에 올라타 싸우는 전술에 대응하는 설계로 볼 수 있어요.
『난중일기』에는 개전 직전 거북선에 쓸 돛을 만들고 지자포·현자포를 시험 발사한 기록도 남아 있어요.
이분 「행록」의 판자 덮개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남긴 「행록」은 덮개를 판자로 설명해요. 배 크기는 판옥선만 하고, 판자 위에는 열십자 모양의 좁은 길을 냈다고 적었어요.
나머지 부분에는 칼과 송곳을 꽂았으며, 앞은 용머리이고 뒤는 거북 꼬리 모양이었다는 묘사도 있어요.
저는 거북선 모형을 만들 때 지붕을 은색으로 칠한 적이 있어요. 위인전에서 익힌 철갑선이라는 설명 때문에, 금속처럼 보여야 제대로 만든 거북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판자 덮개와 십자 통로라는 묘사는 익숙한 모형을 다시 생각하게 했어요. 제가 기억한 은색 지붕만으로는 아군이 다니는 길과 적의 접근을 막는 장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거예요.
장계에는 용머리의 포 사격과 쇠못이, 「행록」에는 판자 덮개와 십자 통로가 설명돼요. 두 기록에 철판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철제 부품이 전혀 없었다는 주장은 서로 달라요.
거북선 철갑선 논쟁
기록에 쇠못이 나온다고 해서 배 전체가 철판으로 덮였다는 뜻은 아니에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서양인 저술에는 거북선을 미국 남북전쟁의 철갑함 모니터호에 빗대는 설명이 나타나요. 언더우드의 1908년 영문 저술에도 작은 철갑선으로 표현한 대목이 있어요.
1919년 『한일관계사료집』에서는 이 대목을 옮기며 잠항정이라는 표현이 등장해요. 이어 1920~30년대 신문과 아동 도서를 통해 철갑선과 잠수함의 원조라는 이미지가 퍼졌다는 설명이 있어요.
다만 이를 철갑설의 모든 근거가 근대에 만들어졌다는 말로 넓히면 곤란해요. 일본 쪽 기록 일부의 표현을 근거로, 덮개에 철판이나 철제 부품을 덧댔을 가능성을 검토하는 견해도 있어요.
일부 철제 보강의 가능성과 배 전체를 철판으로 감쌌다는 주장은 따로 살펴야 해요.
나중에 이순신의 보고서를 읽었을 때, 저는 철판이라는 말보다 쇠못이라는 설명에 눈길이 갔어요. 처음에는 철갑선이 아니면 거북선의 특별함도 줄어드는 것처럼 느꼈어요.
하지만 덮개로 내부를 가리고 쇠못으로 적의 승선을 막는 기능을 함께 생각하니, 배를 보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금속으로 얼마나 덮었느냐만 따지면 실제 전투를 위해 마련한 장치를 놓칠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이제는 철갑선이라는 수식어를 덜어내는 일이 거북선을 낮춰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록에 남은 설계의 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 가까워요.
거북선 층수
거북선의 겉모습을 설명한 기록이 있다고 해서 내부 층수까지 확정되는 것은 아니에요.
층수 논쟁은 노를 젓는 격군과 포를 쏘는 포수가 같은 층에 있었는지, 서로 다른 층에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이어져요. 장계와 「행록」은 이 배치를 직접 설명하지 않아요.
| 견해 | 내부 배치 | 주요 쟁점 |
|---|---|---|
| 2층설 | 아래층 창고, 위층 노 젓기와 포 사격 | 높이를 낮출 수 있지만 격군과 포수의 공간이 겹침 |
| 3층설 | 아래 창고, 가운데 노 젓기, 위층 포 사격 | 작업 공간을 분리하지만 배 높이와 무게 중심을 검토해야 함 |
두 견해는 각각 공간 활용과 안정성을 어떻게 설명할지 과제가 있어요. 이런 장단점만으로 실제 거북선의 층수를 결정할 수는 없어요.
복원선마다 배 높이와 포 구멍 배치가 다른 것도 어떤 내부 배치를 채택했느냐와 연결돼요.
저는 이 부분에서는 깔끔한 정답보다 추정의 이유를 함께 보여주는 설명이 더 믿음직하다고 봐요. 층수를 적지 않은 기록의 빈칸을 모형이 대신 채웠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거북선 복원선
그림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 그림이 어느 시대의 배인지 먼저 물어야 해요.
1795년 도해의 시간 차이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는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그림과 설명이 실려 있어요. 임진왜란으로부터 200년 넘게 지난 시기의 자료예요.
그동안 거북선은 고쳐 지어졌으므로, 이 도해를 1592년 배의 모습으로 곧바로 옮길 수는 없어요.
2023년 공개된 한 연구는 『이충무공전서』의 수치로 18세기 거북선을 복원하며 갑판 길이를 약 26.5m, 폭을 약 10m로 계산했어요. 지붕은 가운데가 평평하고 가장자리만 둥근 형태로 해석했으며, 철갑으로 덮인 배로 보지는 않았어요.
이 수치와 형태 역시 해당 연구의 복원 해석이지, 임진왜란 거북선의 확정된 치수는 아니에요.
현대 복원선의 제작과 관리
2011년 경상남도의 이순신 관련 사업으로 건조된 ‘1592 거북선’에는 16억 원 이상이 들어갔고, 보도에 따라 20억 원으로 소개되기도 했어요. 국산 소나무 사용 계획과 달리 수입 목재가 쓰였다는 의혹도 제기됐어요.
거제 조선해양전시관 앞에 전시됐던 이 배는 관리 문제로 매각 절차에 들어갔어요. 2023년 경매에서 일곱 차례 유찰된 뒤 154만 5,380원에 낙찰됐지만, 낙찰자가 인수를 포기해 해체·폐기됐어요.
이 사례의 목재 논란과 관리·인수 문제를 역사적 형태 복원의 어려움과 같은 문제로 볼 수는 없어요. 복원에는 기록 해석뿐 아니라 제작 기준과 유지 관리도 별도로 필요하다는 점을 나눠 생각해야 해요.
어느 시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했는지와 빈 부분을 어떻게 추정했는지를 구분해야 해요. 현대 복원선의 제작·관리 결과만으로 역사적 거북선의 성능이나 형태를 판단할 수는 없어요.
돌아보면 은색으로 칠했던 모형은 제가 믿던 설명을 눈앞의 모습으로 굳힌 물건이었어요. 이제 모형이나 도해를 볼 때는 지붕 색보다 어떤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었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어요.
거북선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지만, 하나의 완성된 모습만 찾으려는 기대는 조금 달라졌어요. 용머리의 포와 판자 덮개처럼 기록이 설명하는 부분은 붙잡고, 층수처럼 남은 빈칸은 빈칸으로 두는 편이 그 배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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