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도세자2 사도세자 26년, 대리청정·광증·나경언 고변·영빈 이씨·뒤주 여드레·임오화변·기록 네 개·정조 세초·승정원일기 📚 영조실록 · 한중록 · 현륭원지 · 승정원일기 기록 비교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여드레 뒤 죽었다는 장면은 너무 유명해서 사건 자체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하나씩 펼쳐보면 갇힌 날짜부터 원인까지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계속 나옵니다. 저도 기록이 네 개나 남아 있다면 어느 쪽이 사실에 가까운지 조금은 선명해질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누가 언제 무엇을 지키기 위해 썼는지를 알수록 문장 하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졌어요. 더 결정적인 문제는 왕의 하루를 가장 자세히 적었을 승정원일기 해당 부분이 지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광증이냐 정치적 제거냐를 먼저 고르지 않고,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사라졌는지부터 따라가 보겠습니다.목차1. 사도세자 26년 2.. 2026. 9. 3. 영조 출생과 정통성부터 경종 사망·이인좌의 난, 탕평책·균역법, 장수·건강, 정순왕후·사도세자 📚 영조 재위 51년 7개월 · 출생 · 탕평 · 균역법 · 사도세자 기록 정리조선 왕 27명의 평균 수명이 46세인데 영조는 83세까지 살았고, 재위 기간도 51년 7개월로 가장 길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왕좌를 지킨 사람처럼 보여요. 그런데 기록을 따라가면 52년에 가까운 시간은 편안한 장기 집권보다 자기 자격을 계속 증명하는 시간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낮은 모계 신분과 경종 사망 의혹은 즉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반란군은 정책이 아니라 영조의 혈통부터 공격했습니다. 저는 이 배경을 놓고 보니 탕평책과 균역법도 개혁 군주의 성적표만으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민심을 얻고 당파를 묶고 왕좌의 정당성을 지켜야 했던 현실적인 필요가 정책과 어디에서 겹쳤는지 같이 보겠습니다... 2026. 9. 3.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