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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3

정몽주와 공양왕 옹립, 왕조·과전법의 갈림길 — 이성계의 권력과 낙마, 탄핵·선죽교 피살·시조에서 고려 종언까지 1389~1392년 · 고려사·포은집 관련 내용정몽주를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기억하면, 처음부터 이성계와 반대편에 서 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공양왕을 세운 사람들의 명단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들어 있어요.저는 정몽주를 이해하려면 충신이라는 평가에 앞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어디에서 갈라졌는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일과 왕조 교체까지 받아들이는 일은 같지 않으니까요.1392년 1월부터 4월까지의 흐름을 따라가되, 출발점은 1389년 공양왕 옹립으로 잡아볼게요. 선죽교에서 벌어진 일을 읽으려면 그 전에 조정에서 어떤 선택이 오갔는지부터 살펴야 해요.목차정몽주와 공양왕 옹립정몽주의 왕조·과전법 갈림길정몽주와 이성계의 권력이성계 낙마와 정몽주의 탄핵정몽주의 선죽교 피살과 시조.. 2026. 9. 22.
이방원·태종, 왕자의 난부터 사병 혁파·육조직계제·세종 승계까지 남긴 유산 📚 이방원 · 태종 · 왕자의 난 · 세종 승계 기록 중심 정리정몽주와 정도전, 이복동생 둘, 처남 넷, 그리고 아들의 장인까지. 이방원이 제거한 사람만 이어놓으면 그 뒤에 세종의 시대가 연결된다는 사실이 쉽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태종이 만든 제도를 같이 놓으면 한 방향이 보입니다. 사병을 없애고 외척을 누르고 보고 체계를 왕에게 붙이며, 자신이 왕이 될 때 이용했던 권력의 통로를 다음 세대에서는 하나씩 닫았습니다. 저는 태종의 정치력을 인정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치른 대가를 정당화하는 것은 따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종에게 단단한 바닥을 남겼다는 결과가 앞선 폭력까지 필요한 일이었다고 바꾸는지는 또 다른 문제니까요.목차1. 이방원과 왕자의 난 2. 태종과 사병 혁파 3. 태종과 육조직계제.. 2026. 9. 4.
정도전 조선 건국, 과전법·한양 설계·재상정치·사병 혁파·왕자의 난·복권까지 📚 정도전 · 조선 건국 · 과전법 · 왕자의 난 기록 중심 정리경복궁과 근정전, 숭례문과 흥인지문처럼 지금도 익숙한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정도전이 나옵니다. 새 왕조의 수도와 제도, 정치 원리까지 설계한 사람이 정작 조선이 세워진 지 몇 년 만에 제거됐다는 점은 꽤 묘합니다. 처음에는 이 사건도 새 왕조 안에서 벌어진 흔한 권력 다툼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도전이 만들려 했던 나라를 들여다보면 이방원과의 충돌은 개인적인 원한보다 누가 최종 결정권을 가질 것인가에 가까워 보여요. 정도전은 왕 개인의 능력보다 제도와 재상이 나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문제는 그 설계가 실제로 움직일수록 왕자가 가진 군사력과 미래의 왕이 행사할 권한도 함께 줄어든다는 데 있었습니다.목차1. 정도전과 조선.. 202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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