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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2

정몽주와 공양왕 옹립, 왕조·과전법의 갈림길 — 이성계의 권력과 낙마, 탄핵·선죽교 피살·시조에서 고려 종언까지 1389~1392년 · 고려사·포은집 관련 내용정몽주를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기억하면, 처음부터 이성계와 반대편에 서 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공양왕을 세운 사람들의 명단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들어 있어요.저는 정몽주를 이해하려면 충신이라는 평가에 앞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어디에서 갈라졌는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일과 왕조 교체까지 받아들이는 일은 같지 않으니까요.1392년 1월부터 4월까지의 흐름을 따라가되, 출발점은 1389년 공양왕 옹립으로 잡아볼게요. 선죽교에서 벌어진 일을 읽으려면 그 전에 조정에서 어떤 선택이 오갔는지부터 살펴야 해요.목차정몽주와 공양왕 옹립정몽주의 왕조·과전법 갈림길정몽주와 이성계의 권력이성계 낙마와 정몽주의 탄핵정몽주의 선죽교 피살과 시조.. 2026. 9. 22.
위화도회군 타임라인: 철령위와 요동 출병, 사불가론부터 이성계·최영의 군령, 개경 함락과 우왕 폐위까지 1388년 2~6월 · 고려사 참조 목차철령위와 요동 출병요동 출병과 사불가론위화도회군 타임라인이성계·최영의 군령개경 함락과 우왕 폐위철령위와 요동 출병위화도회군을 장수가 마음을 바꿔 말머리를 돌린 사건으로만 기억하면, 그 전에 오간 요청과 거절은 잘 보이지 않아요. 4월 요동 출병 논의부터 6월 개경 함락까지 날짜를 펼쳐놓으면 한순간의 결심과는 다른 모습이 드러나요.저는 이 사건을 볼 때 누가 더 과감했는지보다 누가 현장에서 군사를 지휘했고, 어떤 조건에서 돌아섰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싶어요. 회군에 앞선 명분과 보급 문제를 따라가면 최영이 막아내기 어려웠던 이유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읽혀요.군대가 돌아선 이유를 알려면, 먼저 왜 국경으로 향했는지부터 봐야 해요. 출발점은 1388년 2월 서북면도안무사 .. 202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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