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인물 · 1314~1323년 행적 중심
이제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고려 말 학자, 만권당, 『역옹패설』이 먼저 떠오르기 쉬워요. 그런데 그 이름들을 연결하면 학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적 선택이 보입니다.
저는 이제현의 학문을 책과 관직의 목록보다, 고려가 위기에 놓였을 때 어떤 근거를 꺼냈는지와 함께 보고 싶어요. 원나라 수도에서 쌓은 지식이 고려의 존속을 주장하는 글로 이어졌다는 점에 눈길이 갑니다.
1314년 만권당에 들어간 스물여덟 이제현과 1323년 입성책동에 반대한 서른일곱 이제현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연경의 학술 교류부터 왕실의 위기와 상서까지, 그 사이의 행적을 따라가 볼게요.

이제현과 만권당
만권당을 책이 많은 서재로만 생각하면, 이제현이 그곳에 간 의미를 놓치기 쉬워요. 고려 학자가 원나라의 지식인들과 같은 자리에서 학문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원 간섭기에 성장한 학자
이제현은 1287년, 충렬왕 13년에 태어났어요. 고려 왕이 원 황실의 사위가 되고 왕자들이 원나라 수도에서 성장하던 시대였습니다.
1301년에는 열다섯 살에 성균시 장원으로 합격하고 이어 문과에도 급제했어요. 아버지 이진 역시 고위 관료를 지낸 학자로, 이제현은 학문과 관직에 기반을 둔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가 원 간섭기 이전의 고려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도 살펴볼 만해요. 원의 영향력이 일상이던 시대에 자랐지만, 그 질서 안에서 고려의 왕조와 제도를 지킬 근거를 찾았다는 점에서 그의 대응을 읽게 됩니다.
충선왕의 연경 학술 공간
만권당은 충선왕이 원나라 수도 연경, 지금의 베이징에 마련한 서재 겸 학술 공간이에요. 이름은 만 권의 책이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쿠빌라이의 외손자인 충선왕은 아들 충숙왕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연경에 자리를 잡았어요. 1314년 무렵 저택에 만권당을 열고 원나라 문인들과 고려 학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곳은 원나라에서 정리된 성리학이 고려로 전해지는 통로가 됐어요. 책의 이동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대화와 교류가 함께 있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이제현의 연경 교류
학자들과 만났다는 한 줄만으로 연경 생활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제현은 충선왕을 보좌하며 고려와 원나라를 오갔고, 원나라 여러 지역을 여행하기도 했어요.
1314년 충선왕의 부름을 받아 만권당으로 간 그는 1316년 서촉, 지금의 쓰촨 지역까지 다녀왔어요. 1319년에는 충선왕을 따라 강남을 여행했고, 이런 여정의 경험은 시와 글에 남았습니다.
| 연도 | 나이 | 행적 |
|---|---|---|
| 1314년 | 28세 | 연경 만권당행 |
| 1316년 | 30세 | 충선왕의 명으로 서촉 방문 |
| 1319년 | 33세 | 강남 여행과 초상화 제작 |
| 1320년 | 34세 | 충선왕 토번 유배 |
| 1323년 | 37세 | 입성책동 반대 상서 |
만권당에서 교류한 인물로는 조맹부, 원명선, 장양호, 우집, 탕병룡, 주덕윤 등이 있어요. 이제현의 글솜씨도 원나라 학자들 사이에서 인정받았다고 전해집니다.
1319년에는 원나라 화가 진감여가 이제현의 초상화를 그렸어요. 세로 177.3cm, 가로 93cm인 이 그림에는 탕병룡의 찬문과 이제현이 나중에 덧붙인 글도 남아 있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이 초상화는 고려 시대 초상화 원본이 드물게 남은 사례예요. 얼굴만이 아니라 함께 글을 남긴 사람들의 관계까지 생각하면, 학술 교류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저도 인물 이름 옆에 대표 저서와 활동 장소를 짝지어 적으며 공부한 적이 있어요. 이제현 옆에는 『역옹패설』과 만권당을 적었고, 그 정도면 인물을 이해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항목을 가리고 이름을 떠올리는 건 가능해도, 그가 연경에서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려니 말이 막혔어요. 책 제목과 장소를 기억하는 일이 그곳에서 쌓은 경험까지 이해하는 일은 아니었던 거예요.
충선왕 유배와 입성책동
원 황실과 가까운 관계라면 충선왕의 지위도 안전했을까요? 1320년의 정쟁은 그 관계만으로 권력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드러냈어요.
1320년, 충선왕의 토번 유배
원나라 황제가 바뀌고 충선왕을 후원하던 세력이 무너지면서, 충선왕은 정쟁에 휘말려 체포됐어요. 유배지는 토번, 지금의 티베트 쪽이었습니다.
1323년 무렵 이제현은 유배 중인 충선왕을 찾아 서쪽으로 길을 떠났어요. 그 여정에서 지은 시들이 문집에 남아 있습니다.
학술 교류를 후원하던 상왕의 몰락은 이제현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았어요. 고려 왕실의 균형이 흔들린 상황을 함께 봐야 다음의 입성 논의가 이해됩니다.
1323년, 고려의 행성 편입 논의
입성책동은 고려를 원나라의 행성, 곧 지방 행정 단위로 편입하려던 움직임이에요. 추진한 인물에는 원에 의지해 권력을 얻은 고려 출신 유청신과 오잠 등이 있었습니다.
충선왕은 유배 중이었고 충숙왕은 원나라에 억류돼 있었어요. 여기에 충선왕의 조카이자 심양왕인 왕고를 고려 왕으로 세우려는 움직임까지 얽혀 있었습니다.
이 논의를 단순히 원나라와 고려의 대립으로만 보면 고려 내부의 권력 다툼을 놓치게 돼요. 원의 힘을 이용하려는 고려 출신 세력과 왕실의 분열까지 함께 살펴야 했던 위기였습니다.
찬성 측은 원의 직할 통치로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어요. 반대 측은 원 세조의 약속과 고려의 특수성을 근거로 왕조 유지를 주장했습니다.
이제현 상서와 입성책동
고려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만으로 원나라 조정을 설득할 수는 없었어요. 이제현은 상서에서 원나라 황제가 이미 한 약속을 근거로 꺼냈습니다.
그 약속은 고려가 원과 강화할 때 쿠빌라이, 곧 원 세조가 고려의 풍속과 제도를 바꾸지 않겠다고 한 원칙이에요. 불개토풍은 토착 풍속을 고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제현은 후대가 이 약속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려는 땅이 좁고 산이 많아 원나라식 행성으로 다스리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논리도 덧붙였어요. 오랜 왕조의 질서를 갑자기 바꾸면 혼란이 커진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상서는 입성책동을 저지하는 데 기여했어요. 원나라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논의가 멈췄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이제현의 행적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서 저는 만권당과 상서가 떨어진 항목이 아니라는 데 주목했어요. 학술 교류를 한 사람이라는 설명 뒤에, 원나라 자신의 약속으로 편입 논의를 반박한 사람이 이어져 있었으니까요.
예전에는 나라를 지킨 글이라면 강한 호소가 먼저 있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하지만 불개토풍을 근거로 든 대목에서는, 상대가 부정하기 어려운 약속을 짚는 일이 얼마나 구체적인 대응인지 느꼈습니다.
그 뒤로 만권당에서의 교류도 유명한 학자들과 만난 경력만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그곳에서 쌓은 지식과 원나라에 대한 이해가 상서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고 보지만, 교류가 곧바로 정치적 성공을 보장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제현의 문하시중과 역옹패설
서른일곱의 상서가 이제현의 마지막 활동은 아니었어요. 그는 1367년까지 살며 그 뒤로도 44년 동안 고려의 학문과 정치에 긴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1325년 정당문학, 1344년 판삼사사, 1351년 도첨의정승을 거쳐 1356년에는 문하시중에 올랐어요. 원나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인물이 공민왕의 반원 개혁 시기에 최고 관직을 맡았다는 흐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1342년에 쓴 『역옹패설』은 역사 이야기와 인물 일화, 시 비평을 자유롭게 엮은 책이에요. 역옹은 늙은 상수리나무라는 뜻의 겸손한 호입니다.
문집 『익재난고』도 남겼고, 공민왕 때는 고려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에 참여했어요. 그 일부는 『사략』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제자 이색을 거쳐 정몽주와 정도전 같은 고려 말 신진사대부로 학맥이 이어졌어요. 만권당의 학술 교류를 한 사람의 경력에만 가두지 않고 다음 세대와 연결해 볼 이유입니다.
이제 저는 인물을 이해할 때 저서와 관직을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위기에서 어떤 근거를 선택했는지 먼저 묻고 싶어요. 이제현에게는 『역옹패설』을 남긴 학자의 모습과 원 세조의 약속을 들어 고려의 존속을 주장한 관료의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서른일곱의 상서와 쉰여섯의 책을 나란히 놓으면, 시험에서 외운 이름이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와요. 책 제목 옆에 그가 지키려 했던 왕조와 설득의 근거도 함께 남겨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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